세계문화유산 고인돌 최첨단 토목기술로 건설되다

    지대넓얕/혜윰 / / 2021. 1. 1. 2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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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문화유단 고인돌

    고인돌이란?

    지석묘(支石墓)라고도 부르며 북유럽, 서유럽, 지중해 연안, 북아프리카, 서남아시아 일대의 신석기시대 묘제로 분포하나 한국의 고인돌과 직접적인 문화적 관계는 없는 듯합니다.

    중국 랴오닝성과 산동반도 및 일본 규슈에도 분포하나, 한국과는 비교되지 않을 만큼 미미합니다.

     

    고인돌은 지상에 4면을 판석으로 막아 묘실을 설치한 뒤 그 위에 상석을 올린 형식과, 지하에 묘실을 만들어 그 위에 상석을 올린 형식과, 지하에 묘실을 만들어 그 위에 상석을 놓고 돌을 괴는 형식으로 구분됩니다.

    전자는 대체로 한반도 중부 이북 지방에 집중되어 있으며, 후자는 중부이남 지방에서 다수를 차지하기 때문에, 이들을 각각 북방식 고인돌, 남방식 고인돌이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지하에 묘실을 만들었으나 남방식 고인돌과는 다르게 돌을 괴지 않고 묘실 위에 상석을 바로 올린 고인돌은 개석식 혹은 변형 고인돌이라고 부릅니다.

     

    고인돌은 제주도를 포함하여 전국에 분포하고 있으나, 황해도, 전라도에 가장 밀집되어 있으며 한 곳에 수백 기의 고인돌이 군을 이루어 분포한 경우도 있습니다.

    북방식 고인돌은 한강 이남 지역에서는 거의 발견되지 않는데, 전라북도 고창에서 발견된 북방식 고인돌이 최남단의 것입니다.

    남방식 고인돌은 전라도 지방에 밀집되어 있으며 경상도와 충청도 등 한강 이남 지역에서 도 많이 발견되고 있습니다.

    한편, 개석식 고인돌은 전국적으로 분포하고 있습니다.


    고인돌 이야기

    4만년 전부터 인류의 조상들은 동물에서 진화돼 의식세계를 갖게 됨으로써 자연이 만든 대지와 모든 만물을 경외심을 갖고 보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자연이 만든 사람과 닮은 거대한 바위라든가 인간이 만들 수 없는 거대하게 솟은 바위들을 보면서 처음에는 자연 그대로의 바위들을 신앙의 대상으로 경배했습니다.

     

    원시부족사회 형성으로 자손의 번창과 마을의 무사태평을 기원하면서 숭배의 대상이 된 남근석과 마을 어귀를 지키는 수호신으로서의 입석 또는 돌장승 등이 탄생하게 되었는데 이러한 남근석과 입석 또는 돌장승이 문명의 태동과 함께 거대한 석조문화로 발전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나라 삼국시대 이전의 석조문화는 고인돌이 형성되기 시작한 고조선의 청동기시대에 가장 먼저 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는데요 청동기문화를 공유하게 된 신석기시대 중반에 들어와 주거 집단의 우두머리 또는 영향력 있는 종교지도자가 죽었을 때 정치와 종교적 측면에서 주검을 땅에 묻고 고인의 내세 영생과 남은 사람들의 안녕을 지켜줄 것을 기원하는 매장 의식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매장 의식은 점차 부족사회의 권력에 의해 권려자의 주검을 안전하게 보전하고 경배의 대상이 되게끔 하기 위해 흙에 매장하는 것에서 발전해 돌을 사용해 기원전 5000년 전부터 거대한 돌무덤이나 피라미드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고인돌 축조기술

    고인돌을 축조할 때 가장 어렵고 중요한 작업이 덮개돌의 채석과 운반입니다.

    덮개돌은 주변 산에 있는 바위나 암벽에서 떼어낸 바위를 이용하였는데 당시 오늘날과 같은 중장비도 없었을 텐데 어떻게 거대한 고인돌을 축조할 수 있었을까요?

     

    우선 쓸 만한 돌을 찾아내거나 커다란 암반에서 떼어내는 방법으로 석재를 구합니다.

    암반으로부터 떼어낼 때에는 바위 결을 따라 난 조그만 틈에 깊은 홈을 파서 나무말뚝을 막고 물에 적시는 방법을 택합니다.

    이렇게 하면 물에 붙어난 나무가 바위를 쩍 하고 가르는데 떼어낸 돌을 운반하는 작업은 큰 통나무 여러 개를 깔아놓고 옮깁니다.

     

    땅을 파서 고임돌을 세운 뒤에는 고임돌의 꼭대기까지 흙을 쌓아올려 경사가 완만하게 둔덕을 만들고, 둔덕을 따라 겊개들을 올린 뒤, 흙을 치우면 고임돌 위에 덜개돌이 얹힙니다.

    고임돌과 덜개돌로 인해 생긴 공간에 주검과 주방품을 넣은 후 편편한 돌판으로 막으면 모든 과정이 마무리되는데요 물론 이와 같은 방식으로 고인돌을 세웠으리라 추정만 할 뿐입니다.

     

    이밖에도 고인돌의 축조기술은 암벽에서 돌을 떼어내는 고도의 기능을 가진 석공이 필요하며, 이를 좀 더 쉽게 운반하고 받침돌 위에 정확하게 올리는 토목설계의 기술을 요합니다.

    엄청난 무게를 가진 고인돌의 축조는 많은 상상력과 불가사의한 의문을 갖게 합니다.


    고인돌과 토목

    고인돌 축조 공사는 현대의 토목, 건축기술로 보아 정교한 구조 설계와 역학적 지식을 갖고 있어야 가능한 대규모 토목 공사에 속합니다.

    고창 운곡리에 있는 고인돌은 높이 4m에 무게가 297톤이나 되는 세계 최대의 고인돌입니다.

     

    297톤의 고인돌 상판을 움직이려면 약 3000명 이상의 인력이 끌어당겨야 하다고 하는데요 이뿐만 아니라 고인돌을 축조한 고조선의 토목건설 기술자들은 당시로서는 세계에서 최고의 토목건설 기술을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수십 톤에서 300톤에 가까운 거대한 석을 2개의 작은 판석 위에 올려놓아 쓰러지지 않게하는 것은 사전에 고인돌의 무게중심이 어디에 있다는 것을 파악해야 가능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상판고인돌을 운반하기 위해 쌓아놓은 흙더미 위로 끌고 올라와서 고인돌을 놓는 위치를 정확하게 잡아야 합니다.

     

    만약 쌓아 놓은 흙더미를 다 치우고 난 후에 고인돌의 무게 균형이 맞지 않으면 2m정도 솟아있는 판석이 균형을 잃고 무너지게 됩니다.

    고조선인들이 고도로 발전된 토목 및 석조 건축 기술을 갖고 있었음이 3000년이 지난 지금도 온전히 남아있는 많은 지역의 거대한 고인돌이 증명하고 있습니다.

    이집트의 피라미드가 크고 웅장하다고 해도 토목 및 석조 건축 기술면에서 보면 고도의 기술을 요구하는 것이 아닌데요 단지 2톤 정도의 사각형 판석을 무너지지 않게 넓게 그리고 삼각형으로 좁혀가며 차곡차곡 쌓는 것으로써 많은 노동력을 필요로 하는 일반 석축 쌓는 공사와 같기 때문입니다.


    고인돌의 분포

    우리나라 고인돌은 북한의 황해도 은율과 평양 등 대동강 유역에 1만 4000여기가 있고, 전남 화순과 고흥 및 강화도에 2만 4000여기가 있습니다.

    특히 전북 고창 선운사 부근에는 2000여기가 밀집되어 있는데 그래서 인지 고인돌 공원과 박물관이 위치하고 있습니다.

    남, 북한의 수몰지역 및 이전된 것을 합하면 전국에 약 5만기가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전 세계에 산재돼 있는 고인돌의 수가 약 8만기로 추정되는데 거석 유물이 많다는 아일랜드조차 고인돌이 1500기에 지나지 않습니다.

     

    우리나라의 고인돌은 그 숫자 면에서 세계 제일이고 전 세계적으로 볼 때 우리나라가 거석문화의 중심지였다는 것을 알 고 있는 대목인데요 이 때문인지 고창, 화순, 강화도의 고인돌 지역이 모두 2000년 12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습니다.

    첨단 과학기술로 건축된 우리나라의 고인돌 유적은 우리들이 소중히 보전해야 할 우리 민족의 자랑스러운 거석문화유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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