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피아니스트 음악영화 같지 않은 음악영화

    알쓸신잡/시네마천국 / / 2020. 8. 28. 2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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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피아니스트 §

    나치 유대인 박해의 시작

    폴란드의 피아니스트 '브와디스와프 슈필만'은 공영 라디오에서 라이브로 피아노를 연주중입니다.

    그러던 도중 갑자기 밖에서 굉음이 들리더니 라디오 녹음실의 창문이 부서지기에 이릅니다.

    그는 황급히 대피하는데 집으로 돌아온 그는 가족들과 함께 라디오 앞에 둘러앉아 뉴스를 듣습니다.

    영국이 최우통첩에 응답을 하지 않은 독일에 선전포고하는 내용이었는데요 가족들은 다행이라며 서로를 끌어 안습니다.

     

    하지만 폴란드를 점령한 독일은 유대인 탄압을 시작하는데요 슈필만의 가족 역시 여러 어려움에 맞닥뜨립니다.

    '유대인들은 2000즐로티 이사으이 돈을 소유할 수 없다'는 법령이 발표되고, 유대인 출입금지 식당, 카페 그리고 공워이 늘어납니다.

     

    나중에는 한쪽 팔에 '다비드의 별' 문양이 그려진 완장을 차지 않으면 외출할 수 없게 되는데 직장에서도 해고당하고 독일 기업에서가 아니라면 일도 할 수 없게 됩니다.

    마침내 그들이 살던 바르샤바에 '유대인 전용 거주구역'이 생기고 도시 전체의 면적 2.4% 밖에 안 되는 작은 공간에 도시 인구의 30%가량이나 되는 35만명의 유대인들이 수용됩니다.

     

    * 다비드의 별

    다비드는 성서위 다윗, 다비드의 별은 '다윗 왕의 방패'라는 뜻을 가진 히르비어 에서 비롯되었는데 유대인과 유대교를 상징하는 표식입니다. 다윗왕의 아들 솔로몬 왕은 이스라엘과 유대를 통합한 후 다우시의 별을 유대 왕의 문장으로 삼았다고 전해지는데 오늘날 이스라엘 국기에 다비드의 별이 그려져 있습니다. 나치 독일은 이 다비드의 별로 노란색 배지를 만들어 유대인을 격리할 때 사용했습니다.


    이름없는 이들의 죽음과 절망

    피아니스트 라는 영화 제목에 걸맞지 않게 영화에서 음악이 나오는 부분이 손에 꼽을 만큼 적은 분량을 차지 하는데요 그나마도 슈필만이나 그의 동료들이 직접 연주하는 것들이 대부분이고 사운드트랙이라고 할 만한 건 거의 없습니다.

     

    애써 감점을 불러일으키려는 장치가 없는 건조한 연출 덕에 마치 다큐를 보는 것처럼 인물들게 쉽게 이입할 수 있었습니다.

    홀로코스트를 다룬 많은 영화들처럼 '모든 유대인은 희생자이고 독일인은 가해자'라는 공식을 따르지도 않았는데 스스로의 안위를 위해 유대인 경찰을 자처하며 독일 편에 붙어 같은 유대인들을 핍박하는 '이츠하크'처럼 다양한 군상의 인물이 등장합니다.

     

    유대인에 대한 차별이 단계적으로 심화되는 과정 역시 이야기 속에 섬세하게 녹아들어있는데 길가는 사람마다 붙잡고 잃어버린 남편을 찾는 여자, 땅에 떨어져 흙 범벅이 된 죽에 얼굴을 박고 먹는 남자, 담을 넘다가 붙잡혀 얻어맞고 목숨을 잃는 아이, 진흙투성이인 길가에 오랜 기간 아무것도 먹지 못해 널부러진 시체들, 극적인 사건보다 일상 가까이로 성큼성큼 다가오는 이름없는 이들의 죽음과 절망이 영화를 더욱 현실감 있게 만듭니다.


    음악영화 피아니스트

    그중 슈필만은 쇼팽을 자주 연주합니다.

    손에 힘을 조금만 줘도 깨져서 없어질 것 같은,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멜로디의 피아노.

    세상에서 음악과 전쟁만큼 전혀 다른 것이 또 있을까요?

     

    전쟁은 온통 의미로 가득합니다.

    이익과 권력다툼 속에서 개인성은 지워지고 인간은 수치화됩니다.

    반면, 음악은 한없이 개인적입니다.

     

    음에 감정을 담을 수는 있어도 메시지를 담을 수는 없습니다.

    음악이 정교하게 탑을 쌓아 없는 걸 만들어내는 것이라면 전쟁은 움직이는모든 걸 부수는 일입니다.

     

    극중 슈필만의 가족들은 모두 수용소로 보내지고, 슈필만 홀로 겨우 빠져나와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받으며 비어있는 아파트들을 전전하며 쥐죽은듯 숨어 지냅니다.

    하지만 그가 지내던 곳에서 반란이 일어나고 보복하러 돌아온 독일군에 의해서 마을 전체가 폐허가 됩니다.

     

    밥을 못 먹어 마르고 털복숭이가 된 슈필만은 아무도 남지 않은 무너진 도시를 마치 쥐처럼 헤메고 있습니다.

    다부서져가는 저택에 숨어든 그는 마침내 먹을 수 있는 피클 통조림을 발견하지만 그의 뒤에는 독일군 장교가 서 있습니다.

    장교는 슈필만에 질문합니다.

    "유대인인가?" 슈필만은 고개를 끄덕입니다.

    "직업이 뭐지?"

    "피아니스트였습니다."

     

    그의 말에 장교는 그를 방 안으로 안내합니다.

    그곳에는 피아노가 있는데 뭔자 연주해 보라는 장교의 말에 슈필만은 피아노 앞에 앉습니다.

    그리고는 쇼팽의 발라드 1번(G마이너)를 연주합니다.

     

    거의 5년여 만에 피아노 앞에 앉게 되지만 그의 손가락은 여전히 길을 알고 있습니다.

    폐허 속에서 그는 온힘을 다해 연주합니다.

    슬픈 춤처럼 서정적인 선율은 막바지에 다다라서 분노하듯 폭박하는데 그 순간 슈필만은 5년 만에 다시 인간이 되었습니다.

     

    빛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식량이 바닥나지는 않을까?

    나치에게 발각되어서 잡혀가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며 하루 하루 시간을 죽여온 것에서 벗어나 그는 연주하고 있었습니다.

     

    영화 내내 공기처럼 스며있던 전쟁과 음악의 대조는 이 장면에서 절정에 달하는데요 그렇게 건조하게 쌓아올린 감정의 탑이 와르르 무너지면서 잊혀지지 않을 장면을 만들어냅니다.

     

    주인공 슈필만 역을 맡은 <에이드리언 브로디>의 연기가 인상 깊은데요 여유가 넘치는 유망한 피아니스트가 극한의 인간 혐오 속에서 변해가는 모습을 그는 표정과 몸동작 하나하나로 섬세하게 연기해냈습니다.

    영화 특성상 거의 혼자서 작품을 이끌어나가야 하는 책임을 맡았는데도 전혀 어려움 없이 완벽히 소화해냈습니다.

    이 작품으로 그는 스물아홉 살의 나이에 최연소로 아카데미를 수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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