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루먼 쇼(The Truman Show) 짐 캐리의 이미지를 바꾸다

    알쓸신잡/시네마천국 / / 2020. 5. 1. 18:32
    반응형

     

     

    소설 <1984>은 빅브라더를 등장시켜 1984년 당원의 모든 것을 감시하는 전체주의 국가의 모습을 그려냈습니다.

    이 소설을 계기로 '빅브라더'라는 용어는 '정보의 독점으로 사회를 통제하는 관리 권력, 혹은 그러한 사회체계'를 일컫는 말로 자리 잡았습니다.

    과거에는 빅브라더의 실체가 비현실적으로 보였지만 현대사회에 이르러서는 소설 속의 것과 흡사한 감시 체계가 실현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빅브라더의 존재를 말할 때 심심찮게 언급되는 영화가 있는데 바로 <트루면 쇼>입니다.

    호주 시드니 출신인 피터 위어 감독은 1974년 첫 영화를 만들고 1980년대 초 할리우드에 진출합니다.

    그가 연출한 영화 <위트니스>, <죽은 시인의 사회>, <그린카드> 등은 상업적인 성공도 거두고 작품성도 인정받게 됩니다.

     

     


    '빅브라더'의 영화 버전

    영화 <트루먼 쇼>에서 보험회사 직원 트루먼 버뱅크(짐 캐리)는 집과 회사를 시계추처럼 오가며 살고 있는데요 트루먼은 아버지를 일찍 여읜 것 말고는 큰 어려움 없이 성장해서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동창 메릴(로라 리니)과 결혼합니다.

    쾌활하고 유머러스한 트루먼은 좋은 남편이자 성실한 직장인이고 건전한 시민인데요 하지만 이는 겉으로 드러난 모습입니다.

     

    영화는 마치 실제 TV 버라이어티쇼인 '트루먼 쇼'를 진행하는 것처럼 출연 배우들의 영상과 크레디트가 나오면서 시작합니다.

    트루먼 쇼는 말 그대로 트루먼 버뱅크라는 남자의 삶을 방송하는 TV 쇼로, 투르먼이 태어날 때부터 유아 시절, 초등학교 입학, 대학 진학, 결혼 등 그의 삶을 죄다 촬영해 보여주는 최고 인기 프로그램입니다.

    하루 24시간 내내 잠드는 모습까지 일거수일투족을 찍어 라이브로 방송되는데 하지만 트루먼 본인은 자신의 생활이 방송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습니다.

     

    트루먼 쇼에 등장하는 사람 가운데 소꿉친구와 직장 동료, 옆집 이웃은 물론, 심지어 부모와 아내까지 트루먼을 제외한 모든 사람이 연기자입니다.

    그들은 배우로서 각본에 따라 트루먼의 주변 인물을 연기하며 행동하는데 그가 어릴 때부터 살아온 섬 시헤이븐도 실제로는 외부인의 출입이 금지된 거대한 세트장입니다.

    이 세트장에 대한 광고 영상에서는 "만리장성과 함께 우주에서도 보이는 전 세계 단 두 개뿐인 조형물"이라고 나오는데 어마어마한 크기의 세트장에 5000대의 카메라와 수없이 많은 조명장치들이 설치 돼 있다는 설정입니다.

     

    아내와 친구 등 트루먼과 가까운 사람을 연기하는 배우들은 연기 생활이 곧 자신의 사생활이라고 말하는데 이들은 대화 중간에 뜬금없는 말을 곧 잘 하는데 이는 쇼를 쳐다보고 있는 시청자들을 향한 간접 광고입니다.

    맥주를 마시던 친구가 "맥주가 이 정도는 돼야지"라면서 맥주 상표를 보여주는 식인데 또한 트루먼을 광고 안내판이 보이는 곳으로 밀어붙인 뒤 이야기를 꺼내고, 잔디를 정리하고 있는 트루먼에게 새로운 잔디 깎기 기계나 나왔다는 식으로 말을 툭툭 던집니다.

    실은 트루먼이 사용하는 모든 생활용품, 옷이나 식품, 심지어 집도 방송으로 광고되고 있는 중입니다.

     

     


    일상 모든 것이 감시당하는 삶

    영화는 촬영 1만 909일째 트루먼의 출근 풍경을 보여주며 시작되는데요 트루먼은 현재 29세 10개월 정도의 나이입니다.

    화장실에서 혼자 거울을 보며 영화 대사를 흉내 내던 트루먼은 아내의 재촉으로 출근 준비를 마치고 36이라는 숫자가 선명히 찍힌 현관문을 나섭니다.

     

    집을 나서는 트루먼의 모습을 포착한 장면에서 관객은 카메라의 존재를 감지하게 되는데요 트루먼의 상체가 화면에 꽉 차도록 당겨 찍는 기법으로 촬영한 이 장면에서 카메라는 등장하지 않지만 조작되고 있다는 느낌은 선명하게 전달됩니다.

    영화 <트루먼 쇼>에서는 인위적인 줌 촬영 기법을 노출함으로써 트루먼의 일상이 감시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트루먼 쇼>에서 거울은 카메라 역할을 하는데 첫 장면에서 트루먼이 들여다보는 화장실 거울은 방송용 카메라였던 것인데요 트루먼 쇼가 방영되는 220개국 시청자들은 거울 속에 비친 트루먼의 모습을 보고 그가 읊조리는 소리를 듣습니다.

     

    거대한 세트장 시헤이븐을 만들고 트루먼 쇼를 제작한 총책임자는 크리스토프(에드 해리스)인데요 각본도 주로 그가 짜고, 중요한 순간에는 본인이 직접 무선통신으로 배우들의 행동이나 대사를 지시합니다.

     

    트루먼은 어린 시절엔 탐구심이 강해 여행가가 꿈이었는데 섬을 벗어나고픈 욕구를 갖고 있었지만, 제작진과 배우들은 그에게 더 이상 탐험할 지역이 없다고 가르치고, 비행기 사고에 대한 공포를 야기하는 등 여러 방법으로 그 욕구를 억제합니다.

    거기에 트루먼의 아버지가 폭풍우로 목숨을 잃는 사건을 연출해 트루먼에게 물 공포증을 심어 주는데 트루먼은 조작된 '아버지의 죽음'을 계기로 트라우마가 생겨 세트장인 섬에서 나가지 못하게 됐지만, 평범한 삶을 사는 와중에도 마음속으로는 항상 섬을 떠난 것을 꿈꿉니다.

     

    그러다 트루먼에게 비현실적인 사건들이 연이어 일어나기 시작하는데요 하늘에서 '시리우스 9번'이라 적힌 조명이 떨어지고, 빗줄기는 그에게만 내리며 죽은 줄 알았던 아버지는 노숙자가 되어 나타나고, 트루먼이 당황한 사이에 길을 가던 회사원들이 갑자기 아버지를 버스에 태워 낚아챕니다.

    아버지의 죽음이라는 갑작스런 스토리 탓에 배역에서 해고된 배우가 앙심을 품고 고의로 트루먼 앞에 나타난 것이었습니다.

     

     


    사랑마저 '쇼'

    아버지 생각에 옛날 물건들을 모아놓은 궤짝을 열어본 트루먼은 대학 시절에 만난 로렌과의 추억을 떠올리는데 당시 트루먼이 첫눈에 반해 사랑에 빠진 로렌은 트루먼에게 자신의 본명은 실비아(나타샤 맥켈혼)고 모든 것이 텔레비전 쇼라며, 그곳을 나와서 자신을 찾으라는 말을 남기고 그녀의 아버지를 자처하는 남자에게 끌려갑니다.

    그 남자는 딸을 데리고 남태평양의 피지섬으로 갈 것이라는 말을 남겼는데, 트루먼은 이후 피지로 가겠다는 꿈을 품고 살아왔습니다.

    출근하는 길에 평소 즐겨 듣던 라디오 방송에서는 그의 동선을 체크하고 누군가 지시를 내리는 방송이 흘러나오는데 트루먼에게 들려줄 라디오와 TV 프로그램 감독이 배우들에게 지시를 내리는 채널이 혼선된 것입니다.

     

    트루먼이 듣고 있다는 것을 알아챈 감독이 리셋을 지시하자 날카로운 삑 소리와 함께 귀에 이어폰을 꽂고 있던 도로의 엑스트라들이 한꺼번에 고통스러워하는 장면이 나오는데요 이상해하던 트루먼은 자기 직장이 아닌 다른 건물로 들어가고, 엘리베이터가 도착해 문이 열리는데, 그 안은 엘리베이터로 꾸민 배우 휴게실이었던 것입니다.

    의심이 들기 시작한 트루먼은 아내를 차에 태운 채 도로를 뱅글뱅글 돌고, 금지된 다리를 건너기도 하면서 피지행을 고집하지만, 그때마다 도로는 차들로 붐비고 방사능 유출 사고가 나는 등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일어납니다.

     

    모든 것을 의심하게 된 트루먼은 아내를 다그치고, 이에 갑작스레 나타난 오랜 친구 말론(노아 엠머리히)이 트루먼과 맥주를 마시며 그의 의심을 풀기 위해 노력하는데요 어린 시절부터 절친인 말론이 진심 어린 위로를 건네는 듯하지만 실제로는 크리스토프가 무선으로 읊어주는 말을 그대로 옮길 뿐입니다.

     

    이후 크리스토프는 트루먼의 의심을 해소하기 위해 노숙자가 돼 나타났던 아버지를 다시 만나게 해 주는데 이 장면에서 시청률은 급상승합니다.

    그러자 크리스토프는 트루먼 쇼 특집 방송을 만드는데 바로 그 라이브 방송에 실비아가 전화를 걸어옵니다.


    실비아 : 크리스토프, 한마디 하고 싶네요. 천하에 나쁜 인간! 트루먼이 가엾지도 않아?

     

    크리스토프 : 많이 듣던 목소리로군. 잊을 수가 없지. 실비아, 공개적으로 날 망신 주는구먼. 약속을 어기고 트루먼과 만나고, 잠깐 방송에 나와 뭐라 떠들어댄 정도로 트루먼을 안다고 생각하나? 뭐가 옳은지 안다고 생각해? 그를 판단할 입장이라고 생각해?

     

    실비아 : 무슨 권리로 아기를 데려다 동물원 원숭이로 만들었죠? 죄책감도 없어요?

     

    크리스토프 : 난 트루먼에게 특별한 삶을 살 기회를 줬어. 우리가 사는 이곳은 역겨운 곳이지. 시헤이븐은 천국이야.

     

    실비아 : 트루먼은 새장에 갇혔어요. 무슨 짓을 했는지 봐요.

     

    크리스토프 : 언제나 떠날 수 있지만 그는 그러려고 하지 않았어. 마음만 먹으면 진실을 알 수 있는데도 시도하지도 않았지. 자네가 괴로운 건 트루먼이 그런 인생에 익숙하기 때문이야.

     

    실비아 : 그렇지 않아요. 틀렸어요. 곧 알게 될 거예요.(전화를 끊음.)


    매스미디어의 슬픈 속살

    이 장면은 영화 주제와도 직접적을 관련됩니다.

    연출자 이름 크리스토프는 자연스레 크라이스트를 연상시키며, 독단에 빠진 오만한 지도자의 단면을 보여주는데요 한 사람의 인생을 구경거리로 만들어놓고는 트루먼에게 평범하지 않은 특별한 삶을 살 기회를 줬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모습은 경악스럽기까지 합니다.

     

    트루먼은 결국 자신의 모든 생활이 조작되고 연출된 삶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데 감시의 눈을 속이고, 두려워했던 바다(거대 세트장에 조성된 바다)로 나선 트루먼은 통제센터가 일으킨 폭풍우를 이겨내고 마침내 거대한 세트를 벗어나 새로운 세계로 나갑니다.

     

    이 영화는 미디어의 맹점과 폭력적인 매스미디어의 본질에 대해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고 있는데요 결말 부분에서 트루먼이 탈출에 성공하고 이를 지켜보던 시청자 모두가 환호성을 지르는데, 정작 마지막 장면은 자동차 정비공 시청자 둘이 "다른 거 볼 거 없나?"라면서 리모컨을 만지작거리는 모습입니다.

     

    이는 감정 이입도 잊는 것도 쉬운 미디어 매체의 속성을 드러내는데 트루먼의 승리와 인간성의 회복마저도 그저 쇼의 일부로 치부하는 현대인의 속성을 꼬집은 것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트루먼 쇼 <는 제71회 미국 아카데미에서 감독상, 남우조연상(에드 해리스), 각본상 후보에 올랐고, 짐 캐리는 제56회 골든글로브에서 남우주연상(드라마)을 받았습니다.

    <에이스 벤추라>, <마스크>, <덤 앤 더머>를 잇달아 히트시키며 할리우드에서 가장 웃긴 남자 배우로 인정받았던 짐 캐리는 <트루먼 쇼>를 계기로 이미지 변신에 성공합니다.

     

     

     

    반응형
    • 네이버 블러그 공유하기
    • 네이버 밴드에 공유하기
    • 페이스북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