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비 브라이언트 NBA 전설이 되다.

    알쓸신잡/스포츠 / / 2020. 3. 29. 2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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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 코비 브라이언트가 사고사로 고인이 되었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젊어서 농구를 좋아했고 일요일 아침마다 코비 브라이언트의 경기를 보면서 길거리 농구를 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습니다.

    이제 고인이 되었지만, 어렸을때 추억한 켠에 자리한 코비 브라이언트의 이야기입니다.

     

     


    천생 농구인 브라이언트

    마지막까지 농구를 하러 가는 길어었습니다.

    2003년 '농구황제' 마이클 조던의 은퇴 이후 팬들의 허전함을 채워준 그는 2020년 1월 26일 오전 자신의 전용 헬리콥터를 타고 로스앤젤레스 북서쪽에 있는 칼라바사스시로 가던 중이었습니다.

    그곳에 그가 운영하는 맘바 스포츠 아카데미(사우전드 오크스)가 있었습니다.

    코비는 네 땅 중 자신의 농구 감각을 똑 닮은 둘째 딸 지아나 마리아-오노어 브라이언트(이하 지아나)가 속한 농구팀을 가르칠 예정이었습니다.

     

    그날따라 안개가 짙었고, 헬기는 평소보다 낮게 날았습니다.

    낮은 고도로 선회 비행을 하면서 안개가 걷히길 기다렸지만 결국 산비탈 지역에 추락하고 말았습니다.

    탑승자 아홉 명 전원 사망.

     

    '블랙맘바(검은 독사)'로 불렸던 코비 브라이언트와 그의 딸 지아나의 이야기입니다.

    갑작스러운 비보에 스포츠인과 전 현직 대통령들의 애도가 잇따랐습니다.

     

    마이클 조던은 "나는 코비를 사랑했다. 그는 내 친동생이나 다름없었다"면서 

    "그와 자주 대화를 나눴다. 그 대화가 무척 그리울 것"이라고 슬픔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그와 세 번이나 우승을 합작했던 샤킬 오닐은 

    "비극적인 사고로 친구와 조카를 잃었다는 고통을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라고 애통해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브라이언트는 역대 최고의 농구선수 중 한 명이며 이제 막 인생을 시작하려 했다. 그는 가족을 너무나 사랑했고, 미래에 대한 강한 열정을 품고 있었다"며 고인을 추모했습니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도 트위터를 통해 유족에게 "사랑과 기도를 보낸다"라고 밝혔습니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과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 부부는 "코비는 세계와 미 전역의 농구 팬들에게 기쁨과 흥분을 가져다줬다"면서 "매우 짧은 시간에 매우 큰 삶을 살다 갔다"라고 애도를 표했습니다.


    천재보다 노력이 먼저

    NBA 코트에서 브라이언트가 이룬 업적은 셀 수 없을 정도입니다.

    파이널 우승 5회, 파이널 MVP 2회, 시즌 MVP 1회, 올스타 18회, 올스타전 MVP4회 ALL-NBA 팀 15회, ALL-Defensive팀 12회 선정 등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만큼 화려한 기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가 자신의 우상인 마이클 조던과 겨룰 만한 성적을 낼 수 있었던 것은 지독한 노력과 집념 때문입니다.

    혹자는 그를 '천재'라 표현하지만, 그는 '노력'이 먼저인 사람이었습니다.

     

    브라이언트는 새벽 4시에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1시간 30분 조깅을 한 뒤 5시 30분부터 1500개의 슛을 성공할 때까지 연습했습니다.

    여기까진 몸풀기, 이후 팀 훈련을 시작하고 끝나면 본격적으로 개인 훈련을 했습니다.

    그는 생전 자신의 생활패턴을 '666 프로젝트'라고 했습니다.

    하루 여섯 시간 중 두 시간은 러닝, 두 시간은 농구, 한 시간은 복싱과 줄넘기, 한 시간은 웨이트 트레이닝에 투자한다는 뜻이라고 합니다.


    승부욕의 화신

    브라이언트가 지독한 연습벌레가 된 것은 지는 것을 죽기보다 싫어할 정도로 승부욕이 강했기 때문입니다.

    그의 자존심과 경쟁심은 누구도 따라오길 힘들 정도였다가 그의 측근들은 하나같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2008년 미국 대표팀 캠프에 있을 때의 일이다. 

    호텔 로비에서 아침 식사를 하고 있는데 무릎에 아이스팩을 댄 코비가 땀에 흠뻑 젖은 채 트레이너들과 함께 들어왔다. 

    무슨 일이냐고 물으니, 새벽에 개인 훈련을 했다고 했다. 

    그때가 오전 8시, '이 사람은 지구에서 온 게 맞을까?라고 혼자 생각했다." 

    -크리스 보쉬, 2008년 미국 농구대표팀 동료

     

    "마이클 조던의 모든 것을 롤 모델로 삼았던 선수가 코비 브라이언트였다. 

    그런데 훈련을 대하는 태도와 독기만큼은 오히려 코비가 조던보다 더 대단했다. 

    이 말을 들으면 조던이 나한테 뭐라고 할 것 같긴 하지만 진짜로 그랬다."

    -필 잭슨 전 감독


    바꾼 등번호 24번의 의미

    브라이언트는 전성기에도 웬만한 부상은 참으면서 경기에 출전했습니다.

    2008~2009 시즌 오른쪽 새끼손가락 인대가 끊어지는 부상을 안고도 경기를 계속 뛰며 레이커스를 챔피언으로 이끌었습니다. 

    올림픽 출전도 감행했고, 미국 대표팀에 금메달을 안겼습니다.

    2009~2010 시즌에도 오른쪽 집게손가락을 다쳤지만, 그는 수술대가 아닌 농구 코트를 택했습니다.

    당시 브라이언트는 뼛조각이 돌아다니는 큰 부상을 당했음에도 이를 참고 남은 일정을 소화해냈습니다.

    그는 2006~2007 시즌을 앞두고 NBA 데뷔 때 달았던 8번 대신 24번으로 등번호를 바꾸면서 

    "하루 24시간, 공격 제한시간 24, 매 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겠다는 의미"라고 했다고 합니다.

     

    앞서 언급했듯 브라이언트의 별명은 블랙 맘바였습니다.

    공중에서 상대를 속일 때 마치 '뱀이 몸을 뒤트는 것 같다'는 뜻에서 붙었는데 그도 팬들에게 이렇게 불리는 것을 좋아했다고 합니다.

     

    2016년 은퇴할 때 브라이언트는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코트를) 떠나도 나는 언제나 아버지의 양말을 신고 방구석 쓰레기통을 향해 공을 던지는 다섯 살 어린아이야"

    브라이언트는 천상의 코트에서도 열정을 불태우고 있을 것입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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