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무선 §
최무선은 누구?
최무선(1325~1395)은 고려 말 조선 초의 무신 겸 정치가로 우리 역사에서 최초로 화약을 이용해서 무기를 발명해냈으며 자신이 개발한 무기로 금강 하구에 침입한 왜구를 물리쳤습니다.
고려후기 사회는 왜구의 침략으로 백성들이 많은 고통을 받고 있었는데 이러한 시대 상황에서 최무선이 발명한 화약으로 무기를 만들어 왜구를 물리친 위대한 과학자이자 무인이었습니다.
최무선은 중국으로부터 화약을 수입하여 고작해야 볼꽃놀이에만 이용하곤 했던 시기에 선구자적인 안목과 노력으로 화약을 개발하여 국산화에 성공했으며 고려는 그가 발명한 화약과 새로운 무기를 가지고 해마다 쳐들어와 노략질을 일삼는 왜구를 격퇴할 수 있었습니다.
최무선의 화약 레시피
초석재료
-숙성토, 사람과 가축의 오줌, 나뭇재, 말똥, 아교
초석준비
- 오래된 집의 부뚜막이나 마루, 또는 온돌 아래서 숙성토를 채취한다.
- 숙성토를 사람과 가축의 오줌, 그리고 나뭇재와 섞은 후 비에 맞지 않게 쌓아 둔다.
- 그 위를 말똥으로 덮고 불을 지핀다.
- 흰 이끼가 생기면 4~5개월 묵혀 둔다. 이를 물로 씻고 졸이면 거친 초석이 나온다.
- 거친 초석을 아교와 섞어 정제한다.
화약 반죽 재료
-초석, 유황, 목탄, 쌀뜨물, 물
화약반죽
- 정제한 초석에 유황, 목탄, 쌀뜨물을 부어 밀가루 반죽처럼 만든다.
-초석 75%, 유황 10%, 목탄 15%의 비율이 이상적 - 반죽을 절구 놓고 종일 찧는다.
-폭발 위험이 있으므로 세게 찧지 말고, 사고 예방을 위해 중간마다 조금씩 물을 부어줄 것. - 반주깅 부드러워지면 모양을 다듬는다.
최무선 화약무기 개발 성공
최무선은 화약무기 개발을 위해 중국인들이 많은 *벽란도를 드나들며 화약 기술자를 찾았고 중국인 기술자 이원에게서 화약 제주 비법을 알아냈습니다.
*벽란도
고려시대에 외국인 사신과 상인들이 왕래하던 나루.
예성강 하구에 있던 고려의 국제 무역항이었는데 예성강은 북한의 황해북도에서 시작해 황해남도로 흐르는 강입니다.
얘성강 하구는 신라 말기부터 해상 세력의 근거지였는데 개경(개성)과 가까워 중국과의 교역이 활발했던 곳으로, 고려 태조인 왕건의 가문은 송악(개성)을 중심으로 벽란도에서 해상 무역을 하던 호족이었습니다.
이때 중국인 왕조교체기여서 혼란스러웠고 기술 감시 또한 허술해진 상황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는데요 화약의 주성분은 유황, 목탄, 초석(염초,질산칼륨) 세가지 인데 이 중 가장 중요한 성분은 초석입니다.
앞에서 화약 만드는 방법을 보면 제일 먼저 초석 만드는게 나오는데 초석을 정제하려면 화학 처리 기술이 필요합니다.
이 기술이 화약 제조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데 최무선은 여러 실험을 거쳐 이들 세 가지 재료의 최적의 혼합 비율(초석75%, 유황 10%, 목탄 15%)을 찾아냈고 1375년 화약 제조에 성공했습니다.
물론 이때까지는 이 화약을 가지고 무기로 만들기 위해 더 많은 자원과 인력이 필요했는데 최무선은 조정에 건의해서 *화통도감을 설치하고 본격적으로 화약무기를 개발하기 시작했습니다.
*화통도감
고려시대에 화약 및 화기의 제조를 맡아보던 임시관청.
1377년(우왕3년) 최무선의 건의에 따라 화약 및 화기의 제조를 담당하는 화통도감을 설치했습니다.
이곳에서 18종에 달하는 화기를 제조했으며 고려 말 왜구를 격퇴하는 데 사용했습니다.
이곳에서 여러 무기를 개발했는데 이 중 가장 먼저 실전에 투입된 것은 대형 화포를 설치한 전함이었습니다.
육지 전투에서는 대형 화포를 옮겨 다니기 어렵지만 배에는 설치도 쉽고 이동도 수월했는데 게다가 고려의 군함은 조수 가만의 차가 큰 바다의 특성에 맞게 폭이 넓고 바닥이 평평해서 포 사격을 할 때 발생하는 진동을 견딜 수 있었습니다.
화포의 위력은 대단했는데요 1380년 금강 하구의 진포에 배 500척 규모의 왜구가 침입해 오자, 고려군은 그 수가 한참 적은데도 정박중이던 왜구의 배를 모두 태울 수 있었습니다.
3년 뒤인 남해의 관음포 해전에서는 전술이 더 발전해서 움직이는 배를 원거리에서 타격할 수 있었으며 전함에 이렇게 화포를 탑재하자 해상 전술도 변화하기 시작합니다.
그 전에는 양측 배가 맞붙은 뒤 병사들이 육탄전을 벌였는데 화포를 설치하니 적에게 접근하지 않도고 공격이 가능해졌으며 놀라운 건 이 전쟁에서 서양보다 200년 앞서 해전에서 화포를 사용했다는 것입니다.
서양에서는 1571년 오스만 투르크와 스페인, 베네치아, 제노바 연합군 간 벌어진 레판토 해전에서 화포가 처음 등장했습니다.
나라를 지킨 최무선의 화약
1377년에서 1387년까지 최무선이 화통도감에서 개발한 화약무기는 18종에 이르렀는데요 소형 총부터 대포에 이르기까지 종류가 다양했습니다.
탄환 발사 무기를 총칭하는 화포는 물론이고 로켓 화살주화, 수레 위에 대포나 신기전을 장착한 발사기 화차, 화약을 매달고 도화선에 불을 붙여 날리는 불화살 화전 등이 있었습니다.
화약무기 개발은 조선 개국 직후에 잠시 주춤했다가 다시 활발해졌는데 한반도 북부의 접경지역으로 여진족이 내려와 민가를 약탈하는 일이 잦아져서였습니다.
한편, 세종 대에 와서는 작고 성능도 훨씬 좋은 무기가 여럿 등장하게 되는데 다양한 총과 포가 등장했고 권총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세총통도 등장했습니다.
또 한가지 획기적인 진전은 '일발다전법' 기술인데요 말 그대로 한 번에 화살 여러 발을 동시에 발사할 수 있는 화포를 고안해낸 것입니다.
화포의 사정거리도 세 배 이상 늘어났고 화약무기의 크기, 품질을 일정하게 정하는 표준화 작업이 이러우졌습니다.
화약무기 만드는 법은 "총통등록(1448년)"에 정리되어 있는데 이 책은 지금 전해 내려오지 않지만 1474년 편찬된 "국조오례의서례" 중 "병기도설"을 보면 "총통등록:의 내용을 추측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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